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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업사명 청동북(奉業寺銘 靑銅金鼓)

  • 시대: 고려(1217년)
  • 크기: 지름 61.0cm, 너비 12.9cm
  • 보물 제576호

경기도 안성 봉업사 절터에서 나온 고려시대 청동북이다. 바라, 금고, 반자라고도 하며, 행사를 알리는 데 쓰는 타악기이다. 옆면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정확한 제작년도와 과정을 알 수 있다.

貞祐五年歲在丁丑名字沙門粲謙住于此竹州奉業寺發願鑄成印 上大匠夫金大匠阿角三大匠景文都色大師洪植 정우오년(1217년, 고려 고종 4년) 죽주 봉업사 주지 찬겸이 발원하여 만들고 새기다. 상대장은 부금, 대장은 아각, 삼대장은 경문, 도색대사는 홍식이다.

김이안 초상(金履安 肖像)

  • 시대: 조선
  • 크기: 길이 79.5cm, 너비 54.9cm
  • 보물 제1500호

심의와 복건을 착용한 강직한 유학자의 모습이 잘 담겨져 있는 이 초상은 정조 때 좨주(祭酒)를 지낸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1722-1791)의 초상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상헌의 후손으로 노론의 낙론(洛論)을 대표하는 김창협의 증손자이자 김원행의 아들이다. 저서로 『삼산재집(三山齋集』12권을 남겼다.

임장 초상(任章 肖像)

  • 시대: 조선
  • 크기: 길이 167.8cm, 103.2cm
  • 보물 제1503호

조선 중기에 이조정랑, 이조좌랑 등을 지낸 임장(任章,1568-1619)의 초상이다. 임장은 1613년 (광해군 5) 광해군의 형, 임해군 역모사건에 공을 세워 익사공신(翼社功臣) 3등에 녹훈되었는데, 이 초상은 익사공신 책록 시 받은 공신상으로 추정된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폐출 후 임장을 포함한 익사공신은 모두 삭훈되었다.(인조실록, 인조원년 9월 2일) 공신녹권과 공신도상 역시 소각하였기 때문에 당시 공신상으로 전해지는 이 초상화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파른본 삼국유사(三國遺事 王歷, 卷一~二)

  • 시대: 조선 초기
  • 크기: 길이 30.9cm, 너비 19.9cm
  • 국보 제306-3호

고려 후기 보각국사 일연(一然)이 1281년(고려 충렬왕 7)에 완성한 역사서 이다. 파른본 『삼국유사』는 연세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낸 ‘파른 손보기 교수’가 소장했던 책을 유가족이 2013년에 기증하였다. 국보 제306호로 지정되어 있는 학산본『삼국유사』(3,4,5권)의 전반에 해당하며, 왕력부터 권2 끝까지 낙장없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최근까지 학술연구에 많이 활용 된 『삼국유사』는 종종7년(1512) 경주부에서 간행한 5권 2책의 중종 임신본인데, 파른본은 이보다 앞서 간행 된 조선 초기본이다. 특히 파른본은 그동안 임신본에서 판독하기 어려웠던 글자나, 착오와 혼란을 교정할 수 있는 정확한 내용이 많아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희귀한 자료 이다.

수선전도(首善全圖)

  • 시대: 1885년경
  • 크기: 길이 99.0cm, 너비 70.0cm
  •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96호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 목판본(보물 제853호,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을 기초로 펜으로 필사筆寫한 지도이다. 한글본으로 제작되어 구한말 한양의 지명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史料로, 2010년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제중원 2대 원장인 헤론(1865-1890) 선교사의 유품으로 지도 하단에 주요 장소를 별도로 영어로 표기하였다. 1885년 4월 10일 개원한, 연세의 시작인 광혜원(제중원)이 있었던 잿골(현, 재동 헌법재판소)에 ‘THE HOSPITAL’ 이라고 명기되어 있어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선교사 모펫(Samuel A. Moffett, 1864~1939) 집안에서 소장하다가 연세대학교 이사를 역임한 아들 Samuel H. Moffett이 1981년 우리학교에 기증하였다.

대사례도(大射禮圖)

  • 시대: 조선
  •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05호

1743년(영조 19)에 윤4월 7일에 거행된 대사례 의식을 기록한 화권(畵卷)이다. 대사례는 오례(五禮) 중 군례(軍禮)에 해당되는 의식으로 영조(英祖)가 임진왜란 이후 폐지된 대사례 의식을 정비하여 부활시킨 것이다. <대사례도>는 어사도(御射圖), 시사도(侍射圖), 시상도(施賞圖)로 나뉘어진 그림 세 장면,“어사삼획(御射三獲)”이라고 쓴 어사의 성적, 집례관(執禮官)이덕인(李德寅)과 집사관(執事官) 이섭원(李燮元)의 관직성명, 밀창군(密昌君,1677~1746) 이하 시사관(侍射官) 30명의 좌목과 성적, 1743년 8월에 쓴 병조판서 서종옥(徐宗玉, 1688~1745)의 ‘대사례도서(大射禮圖序)’로 구성되어 있다.

신축진연도병(辛丑進宴圖屛)

  • 시대: 대한제국
  • 크기: 8폭병 1틀
  •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06호

1901년(광무5, 신축년) 고종황제의 50세 생일을 기념하여 경운궁(현 덕수궁) 함녕전에서 거행된 진연進宴을 그린 8폭 병풍이다. 외진연外進宴, 내진연內進宴, 야진연夜進宴, 익일회작翌日會酌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행사를 진행한 진연청 당상과 낭청의 좌목이 쓰여있다. 7월 26일 열린 외진연을 담은 1,2폭을 보면 황색으로 치장된 휘장과 상탁보로 중앙에 고종 자리를 나타내고 있다. 덧마루에는 정재 공연이 열리고 있고, 3품 이상의 동·서반이 자리하고 있다. 신식 군복을 입은 군졸과 태극기로 대한제국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3,4폭에는 7월 27일에 베풀어진 내진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내진연은 궁궐 내 여관女官들이 담당하였으며 황태자비, 군부인郡夫人, 좌우명부 등 황실의 여성들과 영친왕 종친, 척신들이 참여하였다. 27일 밤에 열린 야진연을 담은 5,6폭은 유리등과 촛대, 사롱등으로 밤을 나타내고 있다.

백자청화영빈이씨 묘지 명기 및 석함(白磁靑華暎嬪李氏 墓誌·明器 及 石函)

  • 시대: 조선
  •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11호

연세대학교내에 있던 영빈이씨(暎嬪李氏, 1691~1764)의 묘인 수경원(綏慶園)을 1970년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西五陵) 이장한 뒤, 1973년 루스채플을 건축하기 위해 터를 파던 중 출토된 유물이다. 영빈이씨는 영조(英祖, 1694~1776)의 후궁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어머니로 아들인 사도세자가 사망한 2년 뒤인 1764년 7월 26일에 경희궁(慶熙宮) 양덕당(養德堂)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이듬해 ‘의열(義烈)’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면서 그의 묘인 의열묘(義烈墓)는 원(園)으로 승격되어 ‘수경원(綏慶園)’이라는 이름이 내려지고, ‘소유(昭裕)’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지(墓誌)는 청화백자로 제작한 2벌이 각각 방형석함 안에 모래에 담겨져 출토되었다. 묘지명 제목에 ‘御製暎嬪李氏墓誌’라 쓰여 있어 묘지문을 영조가 직접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명기(明器)는 모두 20점으로 보(簠), 작(爵), 향로, 호(壺) 등 제기(祭器)를 본뜬 소형 부장품이다.